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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인종 8~11






8.

 세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4년 전 특질연구소 전남지부에서  여름방학동안 가진 소수인종학생들을 위한 특성캠프때였다. 모든 소수인종 학생은 초등학교 재학 기간 동안 가까운 특질연구소에서 2회 이상 특성캠프를 수강해야 한다. 알파등급으로 분류된 아이들은 그 두 배인 4회 이상 특성캠프를 필수 수강해야 한다. 

 한은 벌써 세 번째 특성캠프에 참여하는 나름 ‘올드비’였고, 원과 송은 캠프에 첫 번째로 참여하는 ‘뉴비’였다. 이번 캠프에 참여한 10살짜리 여자아이는 총 10명이 채 되지 않았다. 아이들은 6인실 방 두개를 배정받았고 공정하게 제비뽑기를 해서 인원을 나누었다. 이 때 세 사람은 우연히 묶여 106호 방을 사용하게 된다. 같은 지역에서 온 원과 송은 빠르게 가까워졌다. 애초에 송의 친화력은 굉장히 높은 수준이었고, 원은 그런 송을 밀어내지 않았다. 둘은 일주일도 되지 않아 3학년 반의 유명한 단짝친구가 되었다. 

 그러던 말던 한은 방 구석에 앉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멍하니 구경했다. 딱히 또래 친구들과는 의사소통 하지 않았고 밖에 잘 나다니지도 않았다. 잠을 자거나 옷을 갈아입기 위해 방에 돌아오면 어두운 방 구석에서 기척없이 나타나곤 해서 같은방 아이들이 비명을 지르고 울음을 터뜨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원은 그런 한에게 작은 호기심과 동질감을 느꼈다. 한에게서 또래 아이들보다 조금 더 낡은 정신을 가졌다는 인상을 받았던 것이다. 하지만 굳이 먼저 다가가서 말을 붙일만큼 원이 친화력 있는 성격이 아니었고, 주로 송과 야외에서 시간을 보내느라 방에서 잘 나오지 않는 한과의 접점은 매우 적었다. 점심은 다들 식당에서 해결하는 분위기였지만 식당에서도 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캠프의 3주차 수업은 특성계열별 학습이었다. 원은 106호를 사용하는 5명 중 3명이 진동계열이란 사실을 새삼 알게 되었다. 진동계열 학생들은 안전교육과 실습을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강당이나 세미나실에서 보냈고, ‘기타등등’ 학생들은 개별 e러닝을 위한 단말기가 지급되었다. 즉 방에서 인터넷 강의나 보라는 것이었다. 아침에 송을 포함한 진동계열 아이들이 우르르 방을 빠져나가면 방 안에는 한과 원 두 사람만이 남았다. 둘은 서로의 특성을 모른다. 서로의 등급도 알지 못했다. 사실 원은 센터 선생님들이 한이를 대하는 태도를 대충 살피고 그의 등급을 어림 짐작했다. 대충 알파나 세타일 것이 분명했다. 그럼 왜 교육을 받으러 나가지 않은걸까? 기타등등을 제외한 모든 계열은 안전교육이나 실습수업이 개강되었기 때문이다. 원은 충동적으로 입을 열었다.

“저기....”

 한은 귀를 의심했다. 어색한 정적이 잠시 흐르고, 잠시 후 한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2층 침대 난간에 고개를 걸치고 건너편 침대를 내려다 보았다. 방 반대편에서 원은 어색하게 웃으며 한을 올려다 보았다. 이 방에서 한에게 말을 거는 사람이라곤 여태껏 친화력이 어마무시한 송 한 사람 뿐이었다.

“왜?”

 평소 어린애 답지 않은 원을 눈여겨보던 한은 이 대화가 싫진 않다는 듯 유한 기색을 보이며 대답했다. 둘은 서로에게 몰래 동질감을 느껴왔던 것이다.

“이번 캠프에 델타는 나 뿐이라고 들었거든. 그런데 왜 방에 있어? 나도 사실 델타야?”

 자신의 등급을 스스럼 없이 밝히는 것은 감마와 세타 뿐이었다. 한은 눈을 반짝이며 훌쩍 난간을 뛰어넘더니 사다리를 타고 후다닥 내려왔다. 그리고 빈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한이 2층을 차지한 이층침대는 아무도 다가가지 않아서 1층이 비어있었다. 한은 델타를 처음 본 기색이었다. 

“너 델타니? 근데 그런 걸 나한테 말해도 돼?”

“델타니까 수업 안가고 방에 박혀있지. 그리고 어차피 소수들끼리 델타나 감마 같은거 큰 의미 없잖아."

“아하. 델타란 말이지...."

 답지않게 어린애같이 웃으며 흥미롭다는 듯 눈을 반짝이던 한은 순간 다른 눈빛을 보였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혹시 내가 지금 무례하게 굴었어? 너무 신기해 한거 같네.”

 아, 이렇게 어린애가 저런 말을 하네. 원은 속으로 더 큰 끌림을 느꼈다. 상관하지 않는 다는 식으로 고개를 저으며

“익숙해, 그리고 우리들 다 같은 처지인걸.”

우리들인지 ‘우리 둘’인지 정확히 구분하기 어려운 말을 뱉었다. 한도 마찬가지로 이 말에서 어린애 답지 않은 분위기를 느꼈다. 한은 씨익 웃어보였다.

“나 알파야. 근데 수업은 안가.”

한은 짧은 머리칼을 만지작거렸다.

“들어봤자 아무소용 없으니까.”

 그게 무슨 뜻이야? 라고 물어보려는 순간 106호의 문이 열리고 수업에서 돌아온 아이들이 와글와글 밀려들어오며 우는 소리를 냈다. 

“으악! 안전교육을 세 시간이나 했어, 어제랑 거의 같은 내용으로!”

 송이 과장된 몸짓으로 비틀비틀 가리는 시늉을하며 원의 침대로 다가왔다. 원은 건너편 침대를 힐금 쳐다보았지만 언제 올라간건지 한은 2층 침대 위에서 등을 돌리고 누워있었다. 




9.

 3주차 중반에 접어들자 원은 어떻게 알파등급인 한이 수업에 나가지 않을 수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진동계열 친구들이 빠져나가고 얼마안가 강당에서 두어번 마추쳤던 센터 직원이 방에 들어왔다. 마침 현관 주변에서 머리를 말리던 한은 꼼짝없이 직원에게 팔을 잡혔다.

“한아. 삼일이나 수업을 빠진 거 다 알아. 오늘 수업도 결석하면 아버지께 연락을 드릴 수 밖에 없어.”

 그렇다. 그냥 무단결석 이었다. 그래도 삼일이나 대충 넘어가 준것을 보면 여러번 참석한 아이들은 편의를 좀 봐주는 편인가? 침대에 엎드려 기관에서 배포한 강의를 대강 듣고 있었던 원은 상황을 조용히 지켜봤다.

“저번이랑 저저번, 두 번이나 캠프와서 들었잖아요. 또 듣기 싫어요.”

 한은 조금 징징대는 듯 칭얼거렸다. 그 애원은 직원에게 통하지 않았다. 

“어쩔수 없구나. 아버지께 통화 드릴수밖에.” 

 직원이 티나는 몸짓으로 단말기를 찾는척 가운 안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저렇게 얇은 흰 가운에 안주머니 같은건 없다는 사실을 원이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한은 사색이 되었다. 발작이라도 하는 것 처럼 소리를 질러댔다.

“안돼요! 전화하지 마세요!”

 아니, 마치 절규같기도 했다. 그 뒷모습이 어쩐지 초라하고 작아보여서 원은 눈을 의심했다. 좀 전에 칭얼대던 행동과 대조되게 한은 얌전히 직원을 따라 나갔다. 원은 한이 떠난 현관을 한참을 바라봤다. 

 두시간이나 지났을까.

 아니 세시간 일지도 모르겠다. 원은 방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다 매점에서 식사를 받아왔다. 하루의 한 끼는 식당에서 ‘식사’로 분류된 상품을 받아올 수 있다. 그 식사용 상품을 제외한 다른 상품은 바깥보다 조금 더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 할 수 있었다. 보통은 송과 함께 식당에서 밥을 먹었지만 특성교육이 시작된 후로 낮시간 동안 송이 없으니 매점에서 점심식사를 때우곤 했다. 배가 딱히 고프지 않아서 대충 프로틴바를 골라온 원은 106호 문 앞에 섰다. 그리고 문득 문앞에 어지러이 흩어져있는 검은 먼지조각을 보았다. 꼭 동물의 털 같기도 하고, 그렇다기엔 쉽게 부스러지는 감촉이었다. 내가 나올때도 이렇게 지저분했나? 방은 오전에 한번 저녁에 한번 직원이 들어와서 치운다.  원은 의아함을 느끼며 방에 들어섰다. 검은 먼지조각은 현관에서 방안으로 쭉 이어졌다. 방 구석에서 흐느낌이 들려왔다. 검은 먼지조각은 한의 침대 앞까지 이어져 있었다. 

 2층 침대 위에 이불을 몸에 감은 작은 여자아이가 울고 있었다. 시간간격으로 미루어 보건데 안전교육 수업만 듣고 방으로 돌아온 것이다.

“한아, 안전교육만 듣고 와도 된대?”

“......”

 한은 대답이 없다. 원의 존재가 신경쓰이는지 훌쩍임이 잦아들었다.

“선생님이 너희 아빠한테 전화한댔잖아. 내려와. 강당까지 데려다줄게. 실습수업도 듣고 와.”

“실습 수업 없어.”

원은 한이 아침처럼 칭얼거린다고 생각했다.

“떼쓴다고 될 일이 아니잖아.”

그 소리에 한이 몸을 번쩍일으키더니 홱 고개를 돌리며 울부짖었다.

“난 실습 못해, 터져버린단 말이야!”

 그렇게 소리 지르는 한의 머리가 폭탄이라도 맞은 모양새였다. 그가 고개를 돌린 순간부터 이미 까맣게 그을린 머리칼 끝이 툭툭 끊어지며 사방으로 휘날렸다. 복도와 방안을 어지럽힌 검은 먼지는 한의 머리카락 이었던 것이다. 먼지를 자세히 보니 불에 탄 듯 했다. 적갈색의 단발머리였던 한은 이리저리 머리카락 중간이 끊겨나가 지저분한 더벅머리처럼 보였다. 열에 그을린건지 어쩐지 머리색은 진한 석탄색이 되어있었다. 눈물 범벅이 된 채 씩씩거리던 한은 방안에 어지럽게 흩날리는 제 머리칼을 보더니 외마디 비명을 짜증스럽게 내지르며 다시 침대에 누워버린다. 

 원은 자신이 큰 실수를 했단 사실을 깨달았다. 잠시 고개를 푹 숙인채 자신을 계속해서 책망했다. 그리고 다시 한을 올려다보았다. 원에게 들키고 싶지 않다는 듯 더욱더 몸을 웅크린 채 조용히 흐느끼고 있었다. 무언가 결심 한 듯 원이 사다리에 올랐다. 훌쩍임과 사다리의 삐걱거리는 소리만이 방안에 맴돌았다. 원은 한의 곁에 누웠다. 그리고 한이 누운쪽으로 몸을 돌렸다.

"있잖아. 내 특성이 뭔지 궁금하지 않니?"

한이 순간 멈칫한것을 봤다. 원은 그런 한의 등에 대고 말을 이었다.

"내 특성은 한국에 다섯명 밖에 없대."

한은 어느새 흐느끼지 않고 있었다. 한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정말?"

그런 한의 얼굴에 탄 머리카락 조각과 눈물이 범벅되어 있었다.

"응. 그래서 e러닝 자료 받은것도 다 외국인이 설명하는거에 한국어로 더빙한 것들이야. 볼래?"

 원은 품에서 단말기를 꺼내며 한에게 더 가까이 붙어 누웠다. 한은 그런 원과 접촉하지 않으려는 듯 벽으로 몸을 붙이며 물었다.

"넌 나 안무서워? 눈치 챘잖아...."

 겁을 먹은 것은 오히려 원이 아니라 한이 처럼 보였다. 들쭉날쭉한 머리칼 사이로 두 눈이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난 자폭인간인걸."





10.

 동유럽에서 자살테러사건이 발생했다. 이번 달만 해도 벌써 네 번째. 연구소 내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다.

 그러니까, 아주 예전에는 CCTV라던가, 영상매체 같은 것이 잘 발달되지 않았고 정보통신망의 발달이 미미했기 때문에 소수인종이 수면위로 드러날 일은 별로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21세기로 접어들면서 모든 국민이 손안에 작은 정보통신망을 쥐고 다녔고우리는 숨어살기엔 벅찬 상황이 되었다고 한다. 바다 너머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우리'가 일으키는 크고 작은 사건들을 자연재해로 둔갑시키는 국가 기관이 존재 한다고 한다. 아마 영화에 나오는 FBI같은 것이 그 정체가 아닐까? 문제는 동양이었다. 체제가 강력하지 않아서 국가가 국민 하나하나의 정보를 검수하지 못하는 환경에서 우리들의 사건사고는 CCTV나 뉴스에 자잘하게 조명되기 시작했다. 그때 니샤 초이가 돌풍처럼 나타났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그의 연설을 두고두고 회자하지만, 난 그때 유치원 생이었단 말이다. 기억이 날리가 없다. 동영상을 찾아보니 연설이 있던 해는 2010년 이라고 한다. 

 사실 학생 때 특성캠프에 가서 직접 그를 본 기억이 있다. 인도인 혼혈이라는 그는 진한 인상의 여성이었다. 당시의 나는 무척 성이 난 상태였기 때문에 한명 한명 강단 위로 불러내어 악수를 하고 수료증을 주는 그의 정강이라도 한번 걷어 차줄 심산이었다. 니샤 초이가 우리 가족을 망쳤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었다. 이제와 생각하면 크게 틀린 말은 아니지. 그의 연설로 인해 수많은 인생이 전환점을 맞이했다. 아무튼 다시 어릴적으로 돌아가 보면 아홉살의 나는 정강이를 걷어차이고 꼴사납게 찡그린 니샤의 얼굴을 상상하며 내 이름이 호명되자마자 강당 위로 뛰어 올라갔다. 

"여진 학생?"

 나와 악수하기 위해 그는 상체를 구부렸다. 우리는 손을 잡았고, 순간 나는 눈앞이 약간 흐릿해졌다가 다시 밝아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러자 그가 별안간 소리내어 웃기 시작했다. 수료식을 진행하던 직원들과 강당 아래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며 잡담을 나누던 학생 모두 어리둥절 한 채 그를 쳐다보았다. 나도 덩달아 멍하니 그를 올려다 보고 있었다. 뭐야, 완전 이상한 사람 아니야? 라고 생각하며 뒷걸음질을 치려하자, 그는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나의 눈을 마주보았다. 새까만 눈에 아직 웃음기가 가시지 않은 표정이었다.

"그래, 그랬구나. 하지만..."

그는 주섬주섬 내 이름이 적힌 수료증을 꺼내 내 두 손에 쥐어주며 말했다.

"하지만 너무 미워하지 말아줘."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직원의 손에 이끌려 강당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중학교에 들어갈 때 쯤에서야 내가 그의 특성인 정신 동기화에 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조절계열 중엔 이렇게 소름끼치는 특성이 종종 있다는 편견이 있다. 니샤 초이는 그 편견을 강화시키는데 일조했다. 딱히 그에게 감명받았다던가 하는 이유로 이 직업을 선택한 것은 아니다. 제작년 출판되어 3개월 넘게 베스트셀러로 이름을 떨친 그의 회고록 [최의상실]은 사보지도 않았다. 동료의 책상에 있길래 두어 페이지 읽어 봤을 뿐이다.

첫 챕터의 제목을 이러했다.

'우리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나는 여전히 그가 얄미웠다. 그 꿉꿉한 감정 때문에 나는 그 책을 몇 줄 읽지도 않고 덮어버렸다. 자신은 안전하다는 오만함 하나로 수 많은 사람의 인생을 뒤집어 버린 그를 원망했다. 

 벌써 그 날로부터 1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당신은 나를 잊었겠지. 휴게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멍때리던 나에게 동료가 한명 다가오더니 조심스레 물었다.

"여진씨, 기분은 좀 괜찮아? 동족이 그렇게 되서 어떻게 해..."

 이 사람은 비소수인종 남성이었다. 일단 소수인종에게 '동족'이라는 무례한 단어를 쓰는 종류의 인간은 대부분 비소수인종 남성들이었다. 

"전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인데요, 뭘."

 내 표정이나 분위기를 읽으려는 눈빛이 위아래로 바쁘게 움직였다. 이빨에 고춧가루 꼈어, 이 자식아. 화장실 가서 깔끔하게 정리좀 해..... 등등의 하고싶은 말을, 죄다 목 아래로 삼키고 빙긋 웃어보였다. 자신이 예상한 모습이 아니라서 실망했는지 남자는 실 없는 소리 몇마디를 꿍얼거리다가 자리를 떴다. 여진은 바보가 아니었다. 집사람은 출근하는 것을 만류했지만 여진은 고집을 부리며 굳이 출근을 해서 눈초리를 받고 있었다. 사람들이 자신을 걸어다니는 폭탄 보는 듯 쳐다보았다.

 여진은 10여 종 이상의 안전관리 교육을 모두 이수하여 자폭인간이라는 위험한 특성에도 불구하고 세타등급을 얻은 소수인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새삼 동유럽의 사건과 여진을 연결지어 바라보고 있었다. 연구실에 들어가 봤자 사람들은 어색하게 눈빛교환을 하다가 우르르 나가버리곤 했다. 오늘은 제대로 된 일을 못하겠거니 해서 아무도 오지 않는 별관 휴게실에서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별관 주변에는 기숙사가 지어지고 있었다. 이 연구소 내부에 소수인종 아이들을 양성하는 교육센터를 설립할 것이라는 계획이었다. 여진은 그 학교에 딸이 입학하는 상상을 했다. 너는 이상한게 아니야. 우리는 어디에나 존재하고 이렇게 살아갈거야. 손을 잡고 강당에서 자신들의 권리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상상을 했다. 그러자 마음이 조금 누그러 들었다. 타이밍 좋게 애아빠가 영상 통화를 걸었다.

[여보, 연구소 분위기는 좀 어때요? 괜찮아요?]

"다들 눈칫밥 주고 난리도 아니야. 그래서 오늘은 휴게실에 눌러 앉으려고."

작은 단말기 너머로 집사람이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그냥 아무일도 없었고, 평소처럼 잘 지내고 있다는 거짓말을 할걸 그랬나. 조금은 후회했다. 희미하게 응애 응애 아기 우는 소리가 들렸다.

"이런, 애기 깼나봐."

[엄마보고 싶어서 그러구나? 자 보자, 엄마 어디있나~]

화면이 잠시 흔들리더니 다시 밝아졌다. 작은 단말기를 들여다보는 여진은 눈을 가늘게 뜨고 웃었다.

[엄마한테 인사해 한아. 안녕하세요~]

남편이 작은 아이의 손을 잡고 흔드는 시늉을 했다. 여진은 굽혔던 허리를 꼿꼿이 세우며 단말기 화면에 입을 맞췄다.

"엄마 여기있어 한아. 우리가 여기에 있어...."




11.

 송은 충동적으로 한을 보러 가게 된것을 조금 후회했다. 한의 선물을 사기에 방과후 시간은 너무 짧았다. 알파학생은 가족을 제외한 외부 면회가 한달에 한번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저번달엔 생일기념으로 원과 심사숙고하여 고른 남방을 선물했다. 한이는 제 몸을 잘 챙기지 않아서 날씨에 상관없는 복장을 하고 다니다가 감기에 걸리는 일이 부지기수 였다. 도톰하고 무난해서 한이 자주 입을수 있는 옷을 골랐다. 그렇다면 이번엔 무엇을 선물해 줘야 할것인가. 송은 거실을 이리저리 배회하며 생각에 잠겼다가 거실 구석에 아버지가 두어번 쓰고 다신 쓰지 않은 애매한 성능의 빔 프로젝터를 발견했다. 그리고 한이 고전영화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씨익 웃었다.


 한이는 휴게실 한 가운데 서서 1인 연극을 하듯 그날의 상황을 재연하고 있었다. 자신이 덩치 큰 보안요원의 눈길을 돌리고, 구진오가 특성을 사용해서 세타 학생들을 넘어뜨리고... 영웅담을 이야기 하는 듯 의기양양한 표정이었다. 송은 그 모습을 보고 꺄르륵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원은 몇번이나 CCTV를 곁눈으로 훔쳐보며 음성녹음 기능이 없는 기종이란 것을 확인한 후에야 한의 연극을 보며 웃음 지었다. 한이 우쭐한 표정으로 감시카메라를 등지고 두 세타학생이 우르르 넘어지는 것을 보여주자 송은 박수를 쳤다. 원은 영상을 몇번이고 돌려 보면서 구진오가 매번 한에게 이렇게까지 헌신적으로 행동하는 이유를 생각했다. 몇번 본 바로 그 하얀 남자애는 송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 같았다. 바보같긴, 송은 전혀 관심 없는데.

"아, 안녕. 꽃 좋아해?"

구진오와 두 번째 만났을 때 뜬금없이 어디서 꽃다발을 구했는지 송에게 건네주던 그 깡마른 남자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송 한명에게만 주기에 민망했는지 그 꽃다발의 절반 크기되는 꽃다발을 나에게 건내기도 했다. 한이와 원 사이 짧은 눈빛 교환이 오갔다. 

'말 안했어?'

'얘한테 말해봤자 상황만 복잡해져.'

  대충 이런 의사소통을 눈빛과 입모양으로 주고받았다. 송은 구진오에게 나름 친절한 대응을 해주곤 있지만 한이나 원과 있을 때 더 밝고 즐겁게 재잘거린단 사실을 구진오는 모르고 있을 것이다. 평소 그런 송과 일상시간을 보내는 원의 눈에 구진오를 대하는 송은 비교적 흥미를 못느끼는 표정이랄까. 뭐 당연한 일이다. 세 사람이 함께 보내야 할 시간에 웬 남자애가 끼어들었으니 누구 한 명 정도는 못마땅한 기분을 느끼는 것은 당연했다.

"한아, 왜 쟤 데리고 오는거야? 많이 친해?"

구진오가 화장실에 간 사이 송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내가 데리고 오는게 아니라 지가 따라오는거야."

밖에서 가져온 신상게임팩 뒷면에 쓰여있는 잡다한 정보란을 읽던 한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송은 어쩐지 구진오의 태도가 느끼하지 않냐며 원래 그런 아이인지 꼬치꼬치 캐물었다. 

"쟤가 한이 너 좋아하는거 아니야? 왜 너만 쫄래쫄래 따라다닌대?"

 한과 나는 눈을 마주치더니 쌩뚱맞은 소리에 웃음을 터뜨렸다. 송은 그런 우리를 번갈아보더니 저만 따돌린다며 왜 웃냐고 심통을 부렸다. 그 심통에는 구진오에 대한 질투심도 담겨있을 것이다. 한이 특성연구소 부설학교에 입학하면서 둘은 한달에 한번밖에 얼굴을 볼 수 없는 견우직녀같은 신세가 되고 말핬다. 안그래도 자주 못봐서 가슴아픈데, 한의 곁에 어디서 굴러먹고 왔는지 모르는 돌이 콱 박혀서 따라다니니 샘통이 나지 않을 수 있나. 물론 아무리 특성연구소라도 학기가 끝나면 아이들에게 방학을 허가한다. 한과 진오같은 알파학생의 경우 그 방학이 고작 일주일로 한정 되었을 뿐. 

 입이 삐쭉 튀어나온 송을 보며 한은 귀엽다는 듯 생글생글 웃어보였다. 구진오는 언제 화장실에서 돌아왔는지 물묻은 손을 손수건으로 닦으며 품에서 핸드크림을 꺼냈다.

"누구 바를사람 있어? 코튼향이야."

모두에게 물어보는 말은 아니었다. 자신의 손등에 크림을 바르고나서 바로 송에게 몸을돌려 핸드크림을 내밀었기 때문이었다. 구진오는 늘상 천진난만한 표정을 짓고있어서, 송은 진오를 질투하거나 의심하다가도 쉽게 마음이 풀려 같이 하하호호 어울리곤 했다. 핸드크림을 손에 바르면 송은 진오를 시험하듯 물어봤다.

"근데 너는 특성이 뭐야? 난 진동계열인데."

"나도 진동계열인데, 한이가 말 안해줬어?"

 모든 소수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특성을 물어보는 것을 실례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었다. 특히 알파들은 특성을 밝히는 일에 민감한 편이었는데도 송은 굳이 진오에게 그런 질문을 던졌다. 진오의 곤란한 표정을 보고싶었던게지. 하지만 구진오는 송과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에 마냥 신난 표정이었다. 한은 그 꼴을 봐주기 어렵다는 듯 입꼬리를 씰룩이며 고개를 저었다. 송은 예상대로 되지 않음에 샐쭉한 표정을 지었다.

"난 약한 바람을 부는데, 진동계열 알파면 뭐 태풍이라도 부나?"

"아, 나는 기체쪽이 아니라서 잘 모르겠네... 고체의 마찰력을 조절해. 멋지지?"

 중학교 1학년 교육과정상 송과 원은 마찰력에 대해 배우지 않았다. 원은 책에서 읽은바가 있어 알고 있었지만 송은 고개를 갸우뚱 하는 모습이었다. 송이 전혀 모르겠단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보자 진오는 뭔가를 결심한듯 벌떡 일어나 휴게실 벽에 붙어있는 자판기로 다가갔다. 

"진심이야? 여기 CCTV 있다."

"바로 닫으면 괜찮을거야."

 자판기는 보통 기계 전면부테 열쇠구멍이 있다. 음료수를 새로 채워넣거나 손님들이 넣은 돈을 빼내기 위해서는 자판기를 여는 열쇠가 필요한 법이다. 송과 나는 홀린듯 일어나 구진오의 양 어께에 섰다. 알파가 능력을 쓰는 것을 처음 보기 때문이었다. 구진오는 뭔가 대단한걸 보여주겠다는 듯 우리 둘을 번갈아서 내려다 보더니 자판기 전면부의 열쇠구멍에 손을 얹었다. 

"딱히 만져야 조절할수 있는건 아니지만, 만지면 정확도가 높아지니까."

몇초도 지나지 않아 손을 떼더니 송에게 한번 열어보라고 했다. 원은 설마? 하며 상황을 흥미진진하게 바라보았고 송은 신난 기색을 감추지 않고 곧장 자판기 한쪽을 잡더니 휙 하고 자판기를 활짝 열어버렸다.

"우와, 열렸어!"

 자판기가 갑작스레 열리는 바람에 안쪽에 진열된 과자나 음료수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구진오는 의기양양한 미소를 짓더니 말했다.

"어때, 아무리 뻑뻑하게 잠긴 자물쇠도 다 풀수 있어. 평범한 문도 마찰력을 늘려서 열리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지."

"와~ 멋있다~"

 뒤에서 빈정거리듯 한이 박수를 쳤다. 송과 원은 자판기 내부를 처음 보기 때문에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열린 자판기를 구경하고 있었다. 

"이 녀석들, 뭐하는 짓이야!"

 불같은 목소리에 다들 화들짝 놀랐다. 테이블에 두 다리를 꼬아 올려놓고 있던 한은 거의 미끄러져 넘어질 뻔 했다. 휴게실 입구에서 아이들보다 덩치는 세배 큰 직원이 씩씩거리며 네사람을 쏘아보고 있었다. 눈치빠른 원이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자마자 자판기 문을 닫았으나, 그 흔들림 때문에 자리를 이탈한 새알 초콜릿 봉지가 몇개 바닥에 후두둑 떨어졌다. 참으로 민망한 상황이었다. 직원이 벽을 주먹으로 탕탕 치면서 신경질 적으로 말했다.

"뭐해, 전부 따라 나와!"

한은 익숙하다는 듯 구진오를 바라봤다. 어떻게든 해보라는 의미의 눈빛이었다. 원과 송은 이 일이 잘못되어서 한에게 어떤 불이익이 갈까봐 불안해 하고 있었다.

"죄송해요, 선생님. 제가 장난친거에요. 얘네는 잘 모르는 애들이에요."

 구진오가 자발적으로 직원에게 다가갔다. 직원은 그런 구진오를 보여 이를 갈더니 홱 휴게실 안을 살펴봤다. 알파지만 일상생활에선 비소수나 마찬가지인 한과 일반인으로 보이는 외부학생 두명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눈앞에선 구진오가 히죽히죽 얄밉게 웃고 있었다. 구진오를 아는 것은 아니었지만 앳된 얼굴로 보아 올해 새로 들어온 병아리 학생 같았다. 기강을 잡아야 겠다는 생각으로 직원은 오른손을 번쩍 들어올리더니 철썩, 하고 새하얀 구진오의 얼굴에 손찌검을 했다. 송이 거의 소리를 지를 뻔 했지만 원이 곁에서 그것을 막았다. 직원의 등쌀에 떠밀려 나가는 구진오는 안경을 고쳐쓰며 한을 돌아보곤 '잘했지?'라는 입모양을 하고서는 씨익 웃었다. 한은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친구들을 바라봤다. 원은 심각한 표정이었고 송은 불안한 듯 머리카락 락을 나풀거리고 있었다. 

"쫄지마, 여긴 이런 곳이니까."



고요한노을, 반연등을 그린 고요한입니다. 블로그: http://blog.naver.com/goyohantr 트위터: @goyohan2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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